- 산업통상자원부 이행 점검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수소차 누적 보급은 목표(6만 5천 대)의 44% 수준에 그쳤습니다. 기술과 정책이 맞아도 시장 형성 속도는 계획보다 느렸습니다.
- 제프리 무어는 얼리 어답터와 주류 시장 사이에 '캐즘(Chasm)'이 존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구간에서 투자하면 기술이 옳아도 사업이 버티지 못합니다.
- '이 기술이 맞는가'와 '지금이 들어갈 타이밍인가'는 다른 질문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기술 검증 이후의 시장 대기 비용 전체를 부담하게 됩니다.
100억을 넣고 나서야 타이밍을 물었습니다
2019년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수소 충전소, 수소 버스, 수소 연료전지 관련 투자가 급증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수소 충전소 구축 비용의 50% 이상을 보조하고, 수소 버스 도입 기업에 대당 수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정부가 돕고, 기술이 있고, 시장이 열린다는 신호가 명확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2022년 말 기준 국내 수소차 누적 보급 대수는 약 2만 9천 대로, 로드맵이 제시한 2022년 목표 6만 5천 대의 44% 수준에 그쳤습니다. 수소 충전소도 같은 해 말 기준 167개소로 목표 310개소의 절반을 약간 넘겼습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었고, 정책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이 격차가 말하는 것은 기술의 타당성이 아니라 시장 형성 속도의 문제입니다. 기술이 옳다는 판단과 시장이 준비됐다는 판단은 다른 질문입니다. 이 둘을 같은 질문으로 다루면, 기술 검증이 끝난 뒤 시장 대기 비용을 통째로 부담하게 됩니다.
기술이 옳아도 캐즘에서 사업이 멈춥니다
마케팅 전략가 제프리 무어는 1991년 저서 '캐즘 넘기(Crossing the Chasm)'에서 새로운 기술 시장의 구조를 분석했습니다. 기술을 먼저 수용하는 얼리 어답터와 안정성이 증명된 뒤 들어오는 주류 시장 사이에는 '캐즘'이라 불리는 공백이 있습니다. 이 공백에서는 얼리 어답터가 이미 구매했고 주류 시장은 아직 참조할 성공 사례가 없어 구매를 미룹니다.
수소차 시장은 이 캐즘 구간에 있습니다. 수소차를 이미 구매한 사람들은 기술과 환경에 대한 신념이 있는 얼리 어답터였습니다. 주류 소비자는 충전소 부족, 가격 프리미엄, 검증되지 않은 내구성을 이유로 대기합니다. 충전소가 늘어야 주류 소비자가 살고, 주류 소비자가 사야 충전소 운영이 되는 교착 구조가 캐즘을 길게 만듭니다.
캐즘 구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두 가지 비용이 동시에 생깁니다. 하나는 시장이 열릴 때까지 버티는 고정비입니다. 다른 하나는 경쟁이 형성되기 전에 선점하기 위해 쓰는 비용입니다. 이 두 비용이 동시에 나가는 구간에서 수익이 없으면 사업이 멈춥니다. 기술이 옳아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순교자가 됩니다.
타이밍을 판단하는 세 가지 신호
시장 진입 타이밍을 판단하는 신호는 기술 검증과 다른 지표에서 나옵니다. 첫 번째는 주류 고객이 구매를 미루는 이유가 바뀌는 시점입니다. 처음에는 '기술이 불안하다'가 이유입니다. 이 이유가 '충전소가 부족하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로 바뀌면 기술 캐즘은 넘었고 인프라와 가격 캐즘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각 캐즘을 넘는 해결 방식이 다릅니다.
두 번째는 선행 구매자의 재구매율입니다. 얼리 어답터가 두 번째 구매를 하거나, 이들의 경험을 참고하는 주변이 구매하기 시작하면 캐즘을 건너는 신호입니다. 세 번째는 정부 지원 없이 운영이 가능한 단위가 하나라도 생기는 시점입니다. 보조금 없이 수익이 나는 수소 충전소가 한 곳이라도 있으면, 그 조건을 복제하는 사업이 가능합니다.
Ahn Partners 판단: 수소 사업에 초기 투자를 한 기업들과 이야기하면서 공통된 후회를 들었습니다. 기술이 옳다는 판단은 맞았지만 시장이 준비되는 시점을 너무 낙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이르면 순교자가 되고, 너무 늦으면 낙오자가 됩니다. 이 두 실수는 원인이 다릅니다. 순교자 실수는 기술 판단과 시장 타이밍 판단을 섞었을 때 생깁니다. 이것은 Ahn Partners의 현장 관찰이며, 통제된 연구 결과가 아닙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술이 옳다는 판단과 지금이 들어갈 타이밍이라는 판단은 다른 질문입니다. 지금 수소 또는 새로운 기술 기반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면, 기술 타당성 검토 이후에 시장 준비도 판단을 따로 해야 합니다. 가장 쉬운 시작점은 '보조금 없이 운영 가능한 단위가 이미 존재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점검 목록
- 지금 진입하려는 기술 시장에서 정부 보조금 없이 운영 가능한 사업 단위가 이미 존재하는가
- 목표 고객 중 주류 고객(얼리 어답터가 아닌)이 구매를 미루는 이유를 최근 6개월 안에 직접 확인했는가
- 기술 타당성 검토와 시장 준비도 검토를 별도 문서로 수행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