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ttom line
AI 전환을 시작하는 회사가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은 "어떤 도구를 도입할까"를 첫 질문으로 삼는 것입니다. 제가 27년 동안 기술경영을 하며 확인한 순서는 반대입니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우리 회사에서 어떤 판단이 느리고, 어떤 판단이 반복되는가"입니다. 도구는 그 답이 나온 다음에 골라도 늦지 않습니다.
AI 전환의 첫 질문은 도구 목록이 아니라 판단 목록입니다.
시연회의 박수, 석 달 뒤의 침묵
저는 이 장면을 여러 번 봤습니다. 벤더 시연회에서 임원들이 감탄하고, 도입 품의가 올라가고, 몇 달 뒤 현장에 가 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도구 목록으로 시작한 전환이 늘 이런 식으로 끝났습니다.
도구는 일을 대신하지만, 회사를 움직이는 건 일 자체가 아니라 판단입니다. 발주를 승인할지, 가격을 조정할지, 어떤 고객에게 먼저 연락할지. 이 판단들이 그대로면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회사는 같은 속도로 움직입니다.
| 구분 | 도구 먼저 | 판단 먼저 |
|---|---|---|
| 첫 질문 | 어떤 도구가 좋은가 | 어떤 판단이 느리고 반복되는가 |
| 성공 기준 | 시연 완성도 | 결정 속도와 책임의 변화 |
| 석 달 뒤 | 파일럿 보고서만 남음 | 반복 판단 하나가 실제로 바뀜 |
판단 목록부터 만들었습니다
저는 ERP를 직접 만들었고, 최근에는 사내 AI 도구도 직접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 다 개발보다 오래 걸린 일이 있습니다. 회사 안의 판단을 목록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근거로, 얼마나 자주 결정하는가. 막상 이 목록을 만들어 보면 예상 밖 지점이 나옵니다. 정작 시간이 새는 곳은 거창한 전략 결정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승인과 확인이라는 것입니다. 배차를 바꾸는 판단, 정산 오류를 잡는 판단, 이런 것들이 하루를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판단 목록은 이렇게 만듭니다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제가 쓰는 방식은 세 단계입니다. 먼저 일주일 동안 팀장급 이상에게 자기가 내린 결정을 메모하게 합니다. 형식은 자유입니다. 무엇을 결정했고, 무엇을 근거로 했고, 몇 분 걸렸는지 세 가지만 적으면 됩니다.
다음으로 그 메모를 모아 빈도와 소요 시간 순으로 줄을 세웁니다. 여기서 늘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목록의 위쪽을 차지하는 건 전략 회의가 아니라 승인, 확인, 예외 처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위 다섯 개 판단에 대해 두 가지를 확인합니다. 근거 데이터가 어디 있는지, 판단 기준이 문서로 있는지. 대부분 담당자 머릿속에 있습니다.
이 목록이 나오면 어떤 판단을 AI로 보조할지 윤곽이 잡힙니다. 기준을 문서로 만들고, 근거 데이터를 붙이고, 판단을 보조하게 하는 순서입니다. 도구 시연회를 백 번 보는 것보다 이 반나절 정리가 더 빠른 출발이 됩니다.
도구가 아니라 판단 기능을 사는 것입니다
AI 도입 품의가 올라오면 저는 세 가지를 묻습니다.
- 이 도구는 어떤 결정을 빠르게 합니까.
- 누구의 판단을 덜어 줍니까.
- 틀렸을 때 누가 어떻게 잡습니까.
세 질문에 답이 나오는 과제는 규모가 작아도 성과가 남았습니다. 답이 없는 과제는 시연이 화려해도 파일럿으로 끝났습니다.
그래도 도구부터 봐야 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판단 정리는 오래 걸리고, 도구는 당장 계약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을 자주 받습니다. 시간을 재 보면 반대입니다. 판단 목록 정리는 잘해야 반나절에서 이틀입니다. 잘못 고른 도구의 파일럿은 몇 달을 먹습니다.
도구는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잘못 잡은 문제는 도구를 바꿔도 따라옵니다. 문제 정의가 틀린 채로 벤더만 바꾸는 회사를 여럿 봤습니다. 두 번째 벤더도 같은 이유로 실패합니다.
체크 질문
- 우리 회사에서 가장 느린 판단은 무엇인가요.
- 가장 자주 반복되는 판단은 무엇인가요.
- 지금 검토 중인 AI 과제는 그중 어떤 판단을 바꾸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