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핵심
- 100억 규모 수소충전소 사업에서 기술 검토는 전체 일의 2할이었습니다. 나머지 8할은 부지 확보, 인허가, 주민 설득, 보조금 구조, 운영 준비였습니다.
- 신사업 계획서가 무너지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나쁜 게 아닙니다. 매출 전망이 첫 페이지에 오고 죽는 조건이 맨 뒤 리스크 항목 한 줄에 있기 때문입니다.
- 죽는 조건을 먼저 목록으로 쓰고, 그 조건이 사라질 시점을 계산한 뒤에 매출 구조를 그려야 합니다. 이 순서가 뒤집힌 계획서는 낙관론의 나열입니다.
사업을 끝낼 수 있는 변수의 목록. 인허가 불발, 부지 실패, 자금 공백 같은 항목이 여기 들어간다. 매출 전망보다 먼저 확정해야 신사업 검토가 실제 검토가 된다.
신사업 계획서에서 매출 전망이 첫 페이지에 오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다음에 시장 규모, 사업 모델, 경쟁 분석이 붙습니다. 죽는 조건은 맨 뒤 리스크 항목 한 줄에 있습니다.
저는 이 순서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100억 규모 수소충전소 사업을 직접 추진하면서 배운 게 그겁니다. 계획이 아무리 탄탄해도 순서가 틀리면 옳은 사업도 멈춥니다.
기술 검토는 전체 일의 2할이었습니다
사업 초기에 저도 기술부터 봤습니다. 충전 방식, 설비 사양, 처리 용량. 수소충전소는 기술 집약 사업이니 당연한 출발이라 생각했습니다.
막상 사업을 진행해 보니 기술 검토는 전체 일의 2할이 안 됐습니다. 나머지 8할은 부지 확보, 인허가, 주민 설득, 보조금 구조, 운영 준비였습니다.
부지는 조건에 맞는 땅을 찾아 계약하기까지 예상보다 몇 배가 걸렸습니다. 인허가는 법령 검토보다 관계 기관과의 조율에 시간이 더 들었습니다. 보조금은 받기보다 집행 조건과 시점을 사업 일정에 맞추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어느 것 하나 기술로 풀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민 설득은 완벽한 자료보다 자주 찾아가는 쪽이 통했습니다
가장 예상 밖이었던 건 주민 설득이었습니다. 서류로는 안전 기준을 전부 충족했습니다. 설명회에서 나온 질문은 기준이 아니라 불안이었습니다. 위험하지 않느냐, 왜 하필 여기냐. 기술 용어로 답하면 대화가 끝났습니다.
한 번의 완벽한 설명회보다 여러 번 찾아가 나눈 짧은 대화가 통했습니다. 반대하는 분의 질문을 다음 자료에 반영해 가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습니다. 자료를 줄이고 왕래를 늘리는 일이었습니다.
사업계획서의 리스크 항목 한 줄로는 이 일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일정과 예산에 잡아야 하는 항목입니다.
방향이 옳아도 시점이 맞지 않으면 자본이 버텨야 합니다
신사업에서 제일 아팠던 교훈은 타이밍이었습니다.
방향이 옳아도 시장과 인프라가 준비되는 시점보다 먼저 나가면, 그 간격을 자본으로 버텨야 합니다. 계획을 세울 때 "이게 되는가"만 물었는데, 지금은 "언제 되는가"와 "그때까지 무엇으로 버티는가"를 함께 묻습니다.
이 두 질문이 빠진 신사업 계획서는 낙관론의 나열입니다. 방향은 맞는데 시점을 앞서 나간 사업으로 끝납니다.
죽는 조건부터 확정하고 매출은 그다음에 씁니다
신사업 계획은 매출 전망이 아니라 죽는 조건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신사업을 검토한다면 저는 이 순서로 봅니다.
- 1죽는 조건 목록 작성: 인허가 불발, 부지 실패, 자금 공백처럼 사업을 끝낼 수 있는 변수를 먼저 씁니다.
- 2시점 검증: 수요와 인프라가 언제 만나는지, 그때까지 자본이 버티는지 계산합니다.
- 3매출 구조: 그다음에야 수익 모델을 씁니다.
많은 신사업 계획서에서 이 순서가 반대입니다. 매출 전망이 첫 페이지에 오고, 죽는 조건은 리스크 항목 한 줄로 끝납니다. 그 매출 전망이 가설인지 기록인지는 첫 고객의 결재에서 갈립니다.
사내 신사업이라면 하나 더 있습니다. 본업의 매출 잣대를 그대로 대면 신사업은 반드시 초라해 보입니다. 본업의 백분의 일짜리 매출이니까요. 저는 신사업 초기 성과를 매출이 아니라 죽는 조건을 몇 개 제거했는가로 봅니다.
이 이야기가 인프라 사업에만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죽는 조건의 목록이 다를 뿐, 순서는 같습니다. 서비스업이라면 인허가 대신 규제와 플랫폼 정책이, 부지 대신 채널 확보가 그 자리에 들어갑니다. ERP를 직접 만들었을 때도 확인한 일입니다. 시스템 기능보다 현업 담당자의 수용 시점을 먼저 봐야 했습니다. 종료 조건 없이 시작한 프로젝트가 어떻게 끝나는지와 구조가 같습니다.
지금 검토 중인 신사업에 던질 질문 하나
지금 검토 중인 신사업의 죽는 조건 세 가지를 지금 이 자리에서 적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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